초점거리가 400mm를 넘는 렌즈라면 스포츠나 야생동물 촬영 등 용도가 분명한, 본격적인 망원렌즈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200mm를 넘는 단초점 렌즈들은 용도가 분명한 것처럼, 많이 팔리는 제품이 아니라서 카메라 제조사에서 출시한 제품들이 떠오릅니다. 올림픽을 비롯한 스포츠 이벤트를 보면 가끔 어마어마한 렌즈를 든 포토그래퍼들이 모여있는 장면에서도 ‘흰색의 캐논과 검은색의 니콘’으로만 구분하면 되죠.


과거 시그마를 비롯한 제조사에서 300mm 이상의 망원 단초점 렌즈를 출시하기는 했었지만, 한정된 용도와 만만찮은 가격에 쉽게 구경할 수 없는 제품이었습니다.

DSLR의 활발한 보급에 렌즈들도 신제품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요구하는 제품들이 대부분이고, SIGMA ⓢ 120-300mm F2.8 4 DG OS HSM 등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제품들만 가끔 모습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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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망원렌즈 가운데 제가 경험한 렌즈는 400mm F2.8, 500mm F4, 600mm F4가 있는데, 가장 만족스러웠던 렌즈는 500mm F4였습니다. 가격이 1천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렌즈들이니, 성능이나 화질에서 우열을 가릴 필요 없이 크기와 무게에서 느낀 만족감입니다.


어느 날 ‘가장 만족스러웠던’ 500mm F4 렌즈를 시그마에서 출시한다는 소식을 접했고, 조금씩 들려오는 정보에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제품에 포함된 배낭 가방 상단의 SIGMA 탭.



그리고… SIGMA ⓢ 500mm F4 DG OS HSM을 잠시 경험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작은 사진만 보더라도 ‘나 대포임. 꽤 무거움. (쫌 비쌈)’ 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사진=www.sigma-global.com






시그마 렌즈 사용자라면 익숙한 도시락통은 SIGMA ⓢ 500mm F4 DG OS HSM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1인분의 도시락이 아니라 배식통 정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내부 완충재는 렌즈를 충분히 보호해주며, 상단의 완충재를 빼면 바디를 장착한 상태로도 넣을 수 있습니다. 어깨끈이 달려있어 배낭 가방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만, 별도의 수납공간은 위편에 있는 얕은 공간이 전부라 약간 아쉬웠습니다.



많은 스위치와 버튼은 ‘나 쉽지 않은 렌즈임. (쫌 비쌈)’ 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 AF/MF와 MO (AF 모드에서 초점링을 돌려주면 자동으로 MF로 변경) 선택.

- 최단 초점거리 선택 : 현장 상황에 따라 AF를 10m 이내 / 10m 이상 / 전체 구간으로 구분해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 OS모드 선택 : 1은 상하좌우. 2는 상하의 블러를 잡아줍니다. (패닝샷은 2번!으로 기억)

- 커스텀모드 선택 : 시그마 USB DOCK을 통해서 설정한 모드를 선택합니다. 저는 C1은 AF 속도 우선, C2는 AF 정확도 우선으로 설정했습니다. (USB DOCK은 AF와 OS, 구간별 초점교정 등을 사용자가 직접 설정하는 데 사용되며, AF와 OS의 설정은 커스텀 모드에 할당할 수 있습니다.)





AF 펑션 : 프리셋 AF와 AF 스탑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프리셋 AF는 미리 정해놓은 위치로 초점 위치를 점프시킵니다. 예를 들면, 축구장에서 건너편 골대를 세팅하고 중앙에서 접전을 펼치는 모습을 찍다가 예측하기 어려운 슛이 나온 순간 세팅된 골대로 초점을 맞추는 기능입니다. 물론 엉뚱한 방향을 향하고 있으면 골대 거리만큼 떨어진 엉뚱한 곳에 초점이 맞습니다.


AF 스탑은 렌즈의 AF를 잠시 꺼두는 기능입니다.


두 기능 모두 초점링 부근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작동합니다.






삼각대 소켓은 자유롭게 회전하며, 90도 단위로 클릭 스톱이 적용되어 정확한 프레임 구성이 가능합니다. 클릭 스톱을 끄면 자기가 원하는 각도로 더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습니다.





전용 후드는 카본으로 만들어져서 생각보다 아주 가볍습니다. 망원렌즈의 경우 바디에 마운트한 상태에서 후드가 땅을 향하게 세워놓는 경우가 많은데, 바디와 합해서 5kg에 육박하는 렌즈를 지탱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강도를 지녔습니다.



1D Mark IV에 마운트한 모습. 드롭 인 필터 와 삼각대 소켓 잠금 장치가 보입니다.



경량화를 위해 전체적인 재질은 마그네슘 합금으로 제작됐으며, 최상의 화질을 위해 FLD 유리 2매, SLD 유리 1매가 사용됐습니다. / 출처=www.sigma-global.com


MTF 차트. ‘음? 왜 직선이지?’ / 출처=www.sigma-glob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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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위해 렌즈를 등에 업고 처음 든 생각은 ‘어디서 뭘 찍지?’ 였습니다.


제가 주로 촬영하는 종목들은 300mm면 충분하고, 웬만한 실외종목은 시즌이 끝났고… (아무리 경량화에 신경 써서 가볍다고는 하지만,) 이 무거운 렌즈를 가지고 다니면서 스냅을 찍기도 곤란하고…


렌즈를 한계점까지 혹사시키는 촬영을 해보지 못해서 지금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실내 스포츠는 일반적으로 70-200mm 줌렌즈와 300mm 단렌즈를 이용합니다. 실내 스포츠에서 500mm 망원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시야는 매우 좁고, 선수들의 움직임을 따라가기도 벅찼습니다. 역시 300mm를 넘는 망원렌즈는 넓은 운동장에서 열리는 구기 종목이나 그보다 넓은 서킷에서 열리는 자동차 경주에 적합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좁은 시야에 적응함과 동시에 선수들의 생생한 표정과 작은 동작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평소와는 다른 시각으로 아이스하키를 경험했습니다.







500mm 이상의 망원렌즈가 필요한 실내 스포츠 중 하나인 스피드스케이팅. 안타깝게도 국내대회라 조명이 밝지 않았습니다.












500mm의 화각과 F4의 조리개는 아무래도 실외 스포츠에 적합합니다. 스피드스케이팅과 성격이 비슷하지만, 진행 방식과 규칙이 달라서 완전히 다른 호흡으로 촬영했습니다.





2배 익스텐더를 장착해서 석양을 찍어봤습니다. 망원렌즈가 주는 느낌 중 공간 압축의 느낌은 평소와는 다른 느낌으로 세상을 경험하는 기회를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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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MA ⓢ 500mm F4 DG OS HSM은 모터스포츠를 비롯한 실외 스포츠와 철새 등 야생동물의 생태를 촬영하는 데 적합한 렌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한 최적의 피사체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환경에서 촬영한 느낌은 '아… 시그마가 또!'였습니다.


- 좁은 프레임을 넘나들며 퍽을 놓고 다투는 장면에서도 제가 원하는 선수를 추적하는 AF 성능.

- 의도던, 실수던 원하는 피사체가 프레임의 주변부에 위치한 상황에서도 만족감을 주는 선명한 화질.

- 단단한 만듦새와 신뢰감을 주는 재질.

- 카메라 제조사가 출시하는 동급의 렌즈에 비하면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


숨겨진 매력까지 발견하기엔 사용한 기간이 짧아서 저 네 가지의 매력밖에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SIGMA ⓢ 500mm F4 DG OS HSM의 용도에 적합한 작업을 하시는 분들께서 경험하신다면 더 많은 매력을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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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관심 가지신 분들이 많음에 놀랐습니다. '그 잘났다는 MTF 직선을 뽐내봐라'는 의견을 주신 분이 계셔서 조금 추가합니다.



샘플 사진들 가운데 몇 장을 골라 1:1로 잘라낸 이미지입니다. 사진 전제적으로 초점이 맞은 영역의 선명도는 시그마가 자신 있게 '직선'을 외칠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네요.




샘플 사진들의 촬영환경은 우측 하단에 '카메라 모델 | 셔터스피드 | 조리개 | 감도'를 표시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진은 수평 조절을 위해 최소한의 크롭과 노출 보정 정도의 수정을 거쳐 포토스케이프에서 1200px로 리사이즈 했습니다.


(이 리뷰는 세기P&C(주)로부터 'SIGMA ⓢ 500mm F4 DG OS HSM'을 평가용으로 대여해 작성한 리뷰입니다.)